" 당신은 어떤 사랑을 꿈꾸나요? "
사랑 연애는 어렵다. 나에겐 엄청난 난제다. 20대에 나름의 많은 경험을 가졌지만,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난제다. 30대로 접어들면서 좀처럼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지 못하고있다. 스스로 나름의 분석도 해봤다. 먼저 그동안 해온 연애의 경험이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개방적인 태도를 형성한 것이 아닌 오히려 벽으로 형성되었다. 인간관계에서 받은 행복과 상처 중 상처가 더 깊이 베인 것이다. 점점 좁아지는 문. 그래서 그런지 편안한 사랑을 꿈꾼다. 여자이면서 친구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 책은 '인간이 하는 사랑'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꽤 많은 공감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면서 어떠한 사람이 끌리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다양한 의견과 편견, 이슈 등으로 사람의 본질을 보기 어렵게 만든다. 사람보다 배경을 보게 만드는 사회다. 그래서 우리는 본질을 발견하는 노력을 멈추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본질을 봐주는 것. 이 것이 사랑을 할 수 있는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능력은 내 시선에 있다고 본다. 어떤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이냐. 이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이 점에서 부족하다.
우리는 사회적인 존재다. 사회속에서 우리의 의미가 규정된다. 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대로 내 모습이 바뀌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곁에 좋은 사람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두기 위해서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p.56
내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클로이는 마음이 편치 않았을 수도 있다. 생각이란 판단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판단이라고 하면 무조건 부정적인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편집증적이기 때문이다.
p.67
어쩌면 어떤 사랑은 아름답거나 고귀한 존재와 사랑의 동맹을 맺음으로써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약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충동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사랑해준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돌아와 우리를 애초에 사랑으로 몰고 간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원했던 것은 사랑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저 믿을 수 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믿게 되었으니 우리가 어떻게 계속해서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p.85
새로 배우고, 나 자신을 제시하고, 내가 순응해야 할 완전히 새로운 사람. 어쩌면 그 순간 나는 내가 앞으로 클로이에게서 발견할 모든 차이를 생각하며, 그녀는 그녀고 나는 나일 그 모든 시간, 우리의 세계관이 양립할 수 없는 시간을 생각하며 두려움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창 밖으로 윌트셔의 시골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마치 길 잃은 아이처럼 내가 이미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 그 집, 부모, 역사의 특이한 점까지 이미 다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갈망했다.
p.121
내가 부여하기로 결정한 어떤 것일 뿐이다. 사람이란 절대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이것은 사람을 사랑하는것이나 미워하는 바탕에는 주관적이고, 또 어쩌면 환상적인 요소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윌은 신중하게도 클로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지 않고, 더 정확하게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다.
p.124
눈에 보이는 것은 몸뿐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홀린 연인은 영혼 역시 그 껍질과 똑같기를 바라게 된다. 몸이 거기에 어울리는 영혼을 가지고 있기를, 살갗이 표현하는 것이 속에 든 본질이기를 바라게 된다. 나는 몸 때문에 클로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본질에 희망을 품게 해주었기 때문에 그 몸을 사랑했다. 그것은 매우 가슴 설레는 희망이었다.
p.138
경험이란 무엇인가? 예의바른 일상을 부수고 짧은 시간 동안 고양된 감수성으로 새로움, 위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을 목격하는 것이다. 공유된 경험이라는 기초 위에서 친밀성은 자라날 기회를 얻는다. 그저 이따금씩 식사를 함께 하면서 생긴 우정은 결코 여행이나 대학에서 형성된 우정의 깊이를 따라 갈 수 없다.
p.141
라이트 모티프들은 중요했다. 그것이 우리에게 우리가 서로에게 남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었고, 일들을 함께 겪어가며 산다는 느낌을 주었으며 함께 끌어낸 의미를 기억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라이트 모티프들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접착제 역할을 했다. 그 라이프모티프들이 만들어낸 친밀성의 언어는 클로이와 내가 둘이서 하나의 세계 비슷한 것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기억나게 해주었던 것이다.
p.143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 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가? 오직 인간만이 연체동물이나 지렁이와는 달리 자신의 규정하고 자의식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어디에서 끝나고 다른 사람들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지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제대로 된 느낌에 이를 수 없다. "혼자서는 절대로 성격이 형성되지 않는다." 스탕달의 말이다.
성격의 기원은 사람들의 반응에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자아는 유동체이기 때문에 이웃들이 윤곽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온전하다는 느낌을 얻으려면, 근처에 나 자신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 때로는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p.149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 자신에 대한 느낌은 달라진다. 우리는 조금씩 남들이 우리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자아는 아메바에 비유할 수 있다. 아메바의 외벽은 탄력이 있어서 환경에 적응한다. 누가 나를 수줍어한다고 생각하면 결국 수줍어하게 될 것이다. 누가 나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계속 농담을 할 가능성이 높다.
다른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는 것은 보통 소리 없는 과정임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반응을 통해서 그것을 채택하고 암시할 뿐이다. 은밀하게 우리에게 정해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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