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우리 마라톤 나가자”
“또 시작이다 저거. 야 너 혼자 나가 쫌”
마라톤 대회 약 세 달 전 우리는 나의 의견으로 인해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두 명의 친구들과 마라톤을 신청했다. 역시나 나의 주도였다. 이런 사서 고생하는 액티비티는 주로 나의 의견으로 참여하게 된다. 등산 등등. 또 한 번 친구들의 힘든 모습으로 희열을 느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애들아 걱정하덜덜마. 나 군대에서 오래 달리기로 중대에서 5등 안에 들어왔다니까. 진짜 마라톤 하나는 자신있다. 내가 페이스 메이커 할게. 따라만 와”
나는 오래 달리기에 꽤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자신있게 말했다. 내가 군대에 있었을 때, 일정 체력 수준이 되면 특급전사라는 명칭을 달아주는 제도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시험을 보았을 때, 나는 오래 달리기 종목에서 꽤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다. 좀 오래되었지만, 그 기억이 강렬해서 나는 박지성처럼 ‘두 개의 폐까지는 아니어도, 일쩜오 폐를 가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우리는 각자 마라톤을 준비하였고, 친구들이 야근이나 귀찮음으로 준비하지 않을 때, 나는 혼자 꾸준히 헬스장에 방문하여 마라톤을 연습하였다. 아 이럴 때 보면 나는 내가 하고자하는 거에 대해서는 꽤 성실하다는 생각으로 뿌듯해 하면서. 마라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친구들에게 훈계를 하는 것을 잊지 않으며, 차근차근 준비해갔다.
그리고 드디어 마라톤 당일 날, 나와 친구들은 새벽부터 버스를 타고 JTBC에서 개최한 마라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잠실로 모였다. 친구들과 나는 오랜만에 참여하는 큰 페스티벌에 신나 했다. 누가 봐도 서울 사람은 아닌 느낌. 그 때의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촌스러운 느낌을 지우기 어려울 만큼 우리는 히죽댔다.
“야 대박. 이쁜 사람 겁나 많아. 저기 연예인도 있어”
“빨리 몸 풀자. 몸 풀어.”
우리는 호들갑을 떨며 이상한 모습의 체조로 몸을 풀었다.
“야 다시 한 번 말할 게. 내가 페이스 메이커 할 테니까 따라만 와. 힘들면 말하고”
“아 알았어 알았어”
드디어 달리기 시작.
우리는 나란히 달렸고, 여전히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거리면서 사람구경을 하면서 걱정 없이 신나게 뛰기 시작했다. 여기 모인 사람들과 완주라는 공동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 함께 있다는 것이 신났다. 사람들의 설렘이 영향을 미쳐 마음 속에서 얕은 지진이 일어나는 느낌도 있었다.
친구들 중에서 유독 신난 사람은 나였는데, 앞으로 치고 나가다가도 뒤로 다시 돌아와 친구들 등을 밀어주기도 하면서, 빨리 달리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대단히 깝죽거리며 뛰었다.
“속도 냅시다~!! 속도 냅시다 ~!!! 영선아! 그 거 밖에 못 뛰어????”
“아씨 힘들어 너 먼저 가”
나는 친구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걸 답답해 하면서, 결국엔 친구들에게 이따 만나자는 인사를 하고 앞으로 먼저 치고 나갔다. 그 때부터는 정식으로 나의 기록 갱신을 위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군인이던 시절을 떠올리며, 큰 자신감을 품고 뛰었다. 계속 뛰어 5km 지점까지 달리면서 힘이 조금은 들기도 했지만, 체력적으로 문제는 없었다. 나는 점점 기록 갱신을 위해 속도를 냈고, 7km 지점까지 마라톤이라기 보다 정말 준 전력질주 수준으로 열심히 뛰었다.
‘역시 내 폐는 일쩜오가 맞았어.’
‘역시 내 얄상한 몸과 다리도 다 쓸 때가 있어. 마라톤에 최적화된 몸이야’
꽤 빨리 뛰었기 때문에, 시간을 확인하였을 때, 7km 지점까지 4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릴 만큼 기록도 좋았다.
‘이대로만 가면 50분 즈음에 도착할 수 있겠다. 아자 아자’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오른 쪽 무릎에서 번개를 맞은 듯한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어 이상한데? 하지만 나는 기록에 눈이 멀어 있었고, 속도를 줄일 수 있는 심리적 상태가 아니었다. 계속해서 빠른 페이스로 달렸다.
하지만 점점 통증은 심해져 갔고, 나는 결국 뜀박질을 멈추고 자리에 섰다. 그리고 싸늘한 기운을 느꼈다.
‘헐. 아. 망했다.’
이런 경험이 없어서 많이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정말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아팠다. 결국 우선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갓길로 빠졌고, 잠시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무릎을 잡고 신음했다. 헐 왜 이러지. 아아악 너무 아파!!!!
나는 일어나 다시 뛰어보려고 몇 번을 시도 하였으나, 소용없는 행동이었다. 이걸 가족이 봤다면 등짝 스매쉬 다섯 대는 쳐 맞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걷기 시작했다. 꽤나 크게 좌절하면서…
나는 결국 기록을 포기 하였다. 하염없이 절뚝거리면서 걸으니 짧게만 느껴졌던 3km가 길게 느껴졌다. 비디오 테이프를 길게 늘어뜨린 것처럼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뛰느랴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죽도록 열심히 뛰는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눈에 들어왔고, 날씨는 왜 이렇게 좋은지, 햇빛이 아름다웠다. 어느새 나는 마라톤 참가자에서 구경꾼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저 멀리서 내 친구가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을 하면서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정말 헐레벌떡 뛰는 모습이 못생겨 보였다. 친구는 나를 알아보고 “야, 너 왜 그래!?”라고 말을 했고, 나는 절레절레 하면서 먼저 가라고 했다. 친구는 나를 한심 하듯이 보며 혀를 차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아마 친구와 나는 동시에 뛰기 시작할 때의 까불거리던 나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을 것이다.
“페이스 메이커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궁시렁 궁시렁”
들리지 않는 듯이 이야기했지만 다 들렸다.
결국 나는 1시간 9분의 기록으로 도착지점에 골인하였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나는 친구들의 부축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그 날 하루는 친구들의 놀림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미안..
그 이후로 나는 한 2주 이상을 다리를 절며 생활했다. 아 그 전에 그 날 집에 들어가자마자 예상대로 등짝 스매쉬를 당했다. 또 나는 깁스까지는 아니지만 보호대를 착용하고 다니면서 한동안 눈치를 보면서 회사를 다녔다. 마라톤 나간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하고, 매번 자신감을 피력하였기 때문에, 나는 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겼다.
‘설레발은 필 패다………………’
왜 나는 매 번 무모하게 굴까. 이번 마라톤의 패인은 무엇이었을까. 과거의 나는 어디 갔을까.
하루에 꽤 여러 번, 다리가 욱신 할 때마다 이런 나의 모습에 대해 성찰을 해보았고, 성찰을 할 때마다 나는 혼자 있음에도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신기한 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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