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 일상속내생각
국방색 헤드 셋을 꼭 써야 하는 이유
by 멍뭉미안녕
2020. 9. 28.
친구들이 놀린다. 헤드 셋을 낀다고. 우연히 지하철역에서 만나면 헤드 셋을 쓴 내 모습을 보고 사진을 찍어대며 놀린다. 술자리에선 내 헤드 셋을 벌칙도구로 쓰려고도 한다. 술 게임에 진 사람 10분 동안 쓰고 있기…..
잠시 분노조절 타이밍.
잠시 조금 떨어져서 이 사건의 전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 친구들이 놀리는 이유가 무선이어폰이 대세가 된 이 시기에 시대 흐름에 반하는 많은 부피를 차지하는 헤드 셋을 끼기 때문인가? 아니면 헤드 셋 치고 디자인이 별로인 건가? 아 그냥 날 놀리고 싶은 건가?
헤드 셋을 쓰고 다시 한 번 거울을 보았다.
‘아 괜찮고만 !! 다들 왜 그래?’
나는 아무리 봐도 헤드 셋을 쓴 나의 모습이 썩 괜찮았다. 헤드 셋을 쓰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고 확신을 얻어 친구들의 놀림에 억지로 만들어낸 반론으로 꿋꿋하게 단절의 필요성을 전달했다.
‘야 가끔 세상이랑 단절이 필요해. 다음 너 생일선물은 무조건 헤드셋이야 빨간색으로, 너는 노랑색이고’
라고 이야기하고 대화를 접었다. 친구들이 조금을 짜증을 내었다. 후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한 번은 퇴근길에 단절감이 넘쳐서 과장님이 애타게 부르는 것도 못 듣고 갔다. (다음 날 직원들이 걱정했다.) 솔직히 말해서 친구들의 반응뿐만 아니라, 가끔은 지하철역에서 만나는 오래된 인연들의 시선도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는 곳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작은 시 중 하나라서, 그 동안 스쳤던 인연들을 마주치기 쉽다. 초,중,고등학교 동창. 전 여자친구 등등. 이들도 내 친구들처럼 나를 오덕, 촌스러운 사람으로 보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스친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선이어폰과 질적으로 다른 헤드셋을 포기하기가 참 어렵다. 그 풍부한 음률, 가슴을 쿵쿵쿵 울리는 베이스. 너무나 충만한 경험인데, 이걸 포기하라고!? 만약 내가 포기한다면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 인건데, 이건 ‘나’에 대한 어떠한 도전이다. 후 이겨내기 참 힘들지만, 나중에 나이 더 먹고 돌이켜보았을 때, 헤드셋을 꿋꿋이 썼던 젊은 날의 내 모습이 더 좋을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용기를 낸다. 같아 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겐 적당한 저항이 필요하다.
아~ 다시 여름이 왔다. 다시 모두가 쓰는 간편한 무선 이어폰을 구입해서 사용 중이다. 무선 이어폰은 정~말 간편하다. 이어폰을 쏙 빼서 귀에 꽂기만 하면 노래가 흘러나온다. 여름엔 귀에 땀이 나서 헤드셋을 쓸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음악을 들을 때면 다시 한 번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헤드셋을 품은 겨울을 생각한다. 귀를 따숩게 데워주는 국방색 헤드셋도 나를 기다린다고 믿는다.
*작년 내가 구입한 진한 녹색의 헤드셋, 원래 가지고 있던 무선이어폰이 망가지면서, 새로운 이어폰을 구입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였고, 우연히 색깔에 반해서(?) 계획에도 없던 헤드셋을 구입하였다. 어떻게 보면 군대에서나 쓰일 법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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