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6개월의 프로젝트였던 ‘아빠의 심리 상담 받기’가 드디어 치뤄졌다. 언젠가부터 아빠에게 마음의 응어리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더 늦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노인이 되어가는 아빠의 아집을 조금은 유연하게 하고 싶었다. 그 동안 가끔씩 권유를 하였고, 드디어 술에 취한 아버지에게 10만원 상당의 작업복을 울며 겨자 먹기로 사드리며 약속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심리치료예약 당일에도 아빠는 투덜댔다. 정신병원에 가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런 곳이 아니라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전했다. 몸을 풀기 위해 안마방을 가듯이, 마음을 푸는 곳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동네에 있는 마음심리센터에 방문했다. 사실 상담 관련해서 전문가인 척했지만 나도 처음 가보는 곳이다. 매우 긴장했다. 그 곳의 원장님은 누가 봐도 심리박사처럼 생겼었다. 백발의 조금은 연세가 있으신 여성 원장님. 기품이 느껴졌다. 동시에 그녀는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모습을 보였다. 얼굴을 보았지만, 그새 까먹을 수 있는 존재감이라 조금은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빠는 원장님과 상담실에 들어갔다. 나는 관심없는 척하다가 들어가자 마자 문에 귀를 대고 엿들었다. 하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궁시렁 궁시렁. 목소리가 큰 아빠가 무언가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원장님의 목소리는 간간히 들렸지만 대화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단어 정도만 들리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나보다. 나는 문에 귀를 대고있는 자세로 조금은 목이 메이기 시작했다. 아빠가 자신의 인생을 설명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슬퍼왔다. 아빠는 마음속에서 무엇을 꺼내고 있는 걸까. 방문에 귀를 대고 납작하게 있는 내 모습을 누가 봤으면 웃겼겠지만, 나는 속으로 울고있었다.
그리고 슬픔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전문가의 역량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분명 생전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1시간동안 아빠의 인생을 끄집어내는 것이 대단하게 보였다. 과연 어떤 느낌을 풍기는걸까?
드디어 지나간 1시간, 원장님과 아빠는 대화를 마치고 나왔다. 나는 들은 것이 없는 척. 졸려웠다고 잠들 뻔했다고 전했다. 상담실에서 원장님은 4회기를 권유하였나 보다. 하지만 아빠는 오늘로서 충분하다며 다음부터 오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그러고는 자신은 문제가 없는 것 같다며, 나를 권유했다. 아빠는 항상 나를 특이한 사람으로 생각해왔다. 그러더니 자신이 생각해보니 자신보다 아들이 더 필요하다고 그랬다. 그리고 더 웃긴게 원장님은 갑자기 그렇다면 아들이 받아보라고 타겟을 바꾸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왜..? 다음에 찾아오겠다고 하고 심리센터를 나왔다. 그리고 나는 조심히 조심히 아빠에게 소감을 물었다. 이럴 땐, 관심없는 척 묻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하며. 아빠는 갑자기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며, 횟집으로 데려가셨다. 나는 짬뽕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굳이 횟집으로 데려가셨다. 그러고는 그 때까지 잘 몰랐는데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단 둘이 소주를 마시는 자리더라. 그리고 나와 아빠는 그 동안 못했던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 날 저녁, 아빠의 심리상담은 꽤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빠는 분명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감정적 환기가 일어나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빠에게서 '노력 할게'라는 말을 들었다.
그 네 글자를 듣는 순간 어릴 적 작은 방에서 아빠와 둘이 이불을 덮고 한일전 축구를 보던 것이 생각난 건 왜였을까
'DIARY : 일상속내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펭수가 인기가 많은 이유 (2) | 2020.09.21 |
---|---|
걷기예찬 (1) | 2020.09.14 |
우리룰 (0) | 2020.09.10 |
프롤로그 (0) | 2020.09.09 |
요즘어떠니? (0) | 2020.07.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