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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에서 내가 떠올린 것들 1 _ 딥한 외로움

멍뭉미안녕 2020. 10. 13. 12:06

 

 

 

 

스무 네 살. 친구와의 첫 해외여행으로 다녀온 일본 여행과 학교에서 보내주는 한 달 짜리 필리핀 단기어학연수로 인해 ‘다른 나라’라는 새로운 영역을 발견한 뒤, 툭하면 새로운 나라만 탐했던 시기가 있었다. 사실 이 시기에는 모두가 취업에 대한 압박이 심할 때였는데, ‘스펙 쌓기’라는 단어가 유행할 때가 바로 이 시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취업에 대한 걱정이 심했다. 나는 사회학을 공부한 사회학도로서, 사실 관계와 상관없이 집단과 사회가 주는 영향력을 이해하고 어쩌면 이 사회의 두려움이 과장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속이 빈 사회학도라 주위 친구들과 함께 떨었다. 후덜덜

 

 

아무튼 나는 결국 스펙이나 쌓으라는 주위의 말을 뿌리치고 일과 휴식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워킹 홀리데이라는 제도를 이용하여 자연의 섬나라 뉴질랜드로 향했다. 이 때, 유독 나를 바보 취급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친구의 말을 무시하길 천 번 만 번 잘했다 싶다. 그 친구는 지금 무지하게 돈을 잘 벌어서 덕분에 소고기를 많이 얻어먹긴 하지만.

 

나는 곧바로 뉴질랜드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뉴질랜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 차가운 바람이 주었던 설레임을 잊을 수가 없다. 늘 같던 일상에서 벗어나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두 눈으로 마주하면 마음 한 켠이 샤르르 떨리는 느낌을 받는다. 아! 이건 여행중독의 시작인 것이다. 나는 이 느낌을 가지고 버스에 몸과 캐리어를 실었고, 오클랜드라는 대도시에 도착하였다. 대도시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또 한 번 꽤 높은 수준의 행복감을 경험하는 동시에, 설렘도 계속되면 미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상하게 걱정과 두려움의 감정은 어디간 데 없고, 모든 것이 설레였고, 새로웠고 멋있게 보였다. 새로운 도전에 앞서 희망만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이건 단순 해외 여행지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그 느낌이 아니다. 심히 도전적인 여행을 앞뒀을 때, 적정 수준의 긴장감이 몸을 감쌀 때 느끼는 색다른 느낌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설렘에 정말 미쳤던 게,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이 다 친구로 느껴졌다. 아무도 나를 환대하지 않을 텐데, 내가 그 나라에 도착하고 내가 그 들을 환대했다. 2주 동안 나는 먼저 그들에게 말을 걸고, 먼저 웃어줬다. 필리핀 한 달 어학연수에서 온 짧은 영어실력으로 공책에 적어 온 10가지 질문을 만나는 사람마다 했다.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감은 오래 가지 못했다. 딱 2주였다.

 

 

2주 후, 나는 난생 처음 폐인 비슷한 상태가 되었다.

 

 

방 안에 보이는 건 보드카 두 병. 다이어리. 노트북. 등등

2주 동안 누군가와 대화를 하지 못했다. 미친놈처럼 웃고 떠들고 낯섦에 즐거워 하다가, 후폭풍을 맞은거다. 그리고 그 때야 깨달은 것이다.

 

 

 

‘아 나 진짜 철저히 혼자구나’

 

 

 

진짜 혼자가 된 이 느낌은 말로 형용하기가 좀 어려웠다. 분명 뉴질랜드 안에서도 한국인 공동체가 있었겠지만, 내가 지낸 동네는 조금 떨어진 곳이어서, 그 공동체와 접촉하기 어려웠다. 이 감정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고, 이 감정이 뭘까 라고 생각할 정도의 성숙함은 또 없었기 때문에, 정통으로 아파했다. 매일 밤 보드카로 취해야 잠이 좀 왔다. 혼자가 되어가는 적정 기간을 거치지 않고, 단 번에 혼자가 된 것이 화근이었던 것 같다. 많은 워홀러들 중 소수는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집에 간다는데, 이게 이런 느낌 때문이었나 싶었다. 서서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어야 했는데, 이 못난 무모함과 단순함으로 단 번에 모든 공동체와 단절했다. 그 것도 내 자발적으로!

 

 

나는 꽤나 딥한 외로움을 겪었다. 나는 이 때, ‘진정한 사회적 단절’을 경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경험은 훗날 이 사회에서 혼자라고 느껴지는 사람에 대해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외롭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때때로 주위에 좋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감정이 들곤 한다. 이 점에 참 동의한다. 하지만 단절감은 외로움과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외로움이라는 감정보다 깊은, 형용하기 어려운 묵직한 느낌이 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적 단절을 겪으며, 온라인 상에서만 소통하거나 또는 온라인을 접하지 못한 세대들은 저 시기의 나처럼 진정한 단절을 겪고 있을 확률이 높다. 나는 자발적으로 단절한 것이기도 하고, 회복 가능한 에너지와 기회들이 곳곳에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하게 이 금같은 순간을 보내고 있나!

요즘 주위를 돌아보면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단절을 하기 쉬운 환경이 점차 조성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고 두렵다.

 

 

다시 돌아와서 2주 뒤, 다행스럽게도 나는 우연히 알게 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조금씩 회복했다. 내 눈을 맞춰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것이 세상 행복한 일이구나 싶었다. 그 감사함과 행복감을 안고 나는 다시 한 번 이 대도시를 떠나, 정말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떠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었다.

이 때부터 였나, 나는 외로움을 잘 안타게 된 것 같다. 아니, 외로움을 느끼더라도 그 것을 인정할 수 있는 회복력을 갖춘 것 같다. 가족이나 친구들, 함께 일하는 사람들 등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내가 찍고 온 외로움의 바닥은 참 쓸쓸했어서, 다시는 그 바닥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

 

아마 지금 그 바닥에는 보드카가 흐르고 있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