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 일상속내생각
출근길에 항상 너는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말해주는 친구
멍뭉미안녕
2020. 9. 29. 14:58
출근 길에서 가끔 마주치는 친구. 바로 효녕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친구인 적어도 15년은 넘게 어울린 친구다. 워낙 인기가 많은 친구라 스무 살 이후로는 얼굴 보기가 힘들었지만 바로 어제도 같이 운동을 했을 정도로 소소하게 오랫동안 만나는 친구다.
이 친구는 다른 친구들과 조금은 다르다. 항상 싱글벙글이다. 연예인 같은 비주얼을 갖고 있어서 그런가. 세상을 참 아름답게 본다. 모든 일에 긍정적이다. 조금 예민한 친구나 현실적인 친구들에게는 철없고, 맘 편하게 산다~ 라는 인식을 주어 핀잔도 참 많이 받지만, 이 친구는 정말 이 친구만의 삶을 고수하는 느낌이 강하다. 이 친구는 사실 우리가 ‘지금 나이대’에 갖추어야 할 사회적 조건이라고 불리는 것에 관심도 없을 뿐더러 충족시키지 않았다. 미래를 위한 희생보다는 현재에 쏟아내는 듯하다. 이십 대부터는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전국구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위로 세 살, 아래 세 살로 이 친구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극 외향적이면서도 인기가 많은 친구다.
우리는 가끔 출근 길에 마주쳤다. 지하철을 같이 기다리면서 티격태격하면서 서로 놀리기도 하고 장난을 친다.
“올~ 오늘도 그지같이 입고 출근하는데~”
“괜찮아. 나는 잘생겨서~ 이렇게 입어도 너보다 돋보여”
“아침부터 재수가 없군. 야 수염이나 잘라”
그리고 헤어질 때, 친구는 항상 같은 말을 한다. 그 것도 변태같이 속삭이듯이 장난스레 이야기한다. 소름끼치게.
“잊지마. 너는 너의 인생의 주인공이야”
원래 이런 캐릭터라서 덤덤하지만 자주 듣지 않을 땐 적응이 되지 않아 내 귀를 의심하기도 한다. 이게 잘생겼다 잘생겼다 하니까 드라마에서 튀어나 온 줄 아나.
“또 또 또 또 지랄” 나는 이어서 이야기한다.
“야 근데 내가 책에서 읽었는데 사실 우리는 존재론적으로 따지면 먼지같은 존재래. 너는 먼지고, 나도 먼지야. 우린 먼지야. 잘 생각해 봐봐 효녕아. 우주에서 지구는 먼지보다 작은 존재래. 그건 알지? 근데 지구에서 인간도 먼지 같이 작은 존재 잖아.
결국 우린 먼지 of 먼지 of 먼지 of 먼지. 우린 먼지같은 존재야. 주인공 아니야. 오케이? 아 듣고있냐고”
친구는 닥치라고 하며 먼저 떠났다. 과학을 안 좋아한다.
친구가 잘 들은 거 같진 않지만 새로운 공격 루트이자 방어루트를 발견한 기분. 기쁘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도, 이 장면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출근 길에서 만날 때마다 이런 긍정적인 말을 해주는 것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아주 옅게 오래 기억 속에 머문다. 나는 비오는 날 집 앞을 걷다가 우리가 나눈 대화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보았다.
난 먼지라고 표현한 것이 그 때는 별 생각 없이 이야기 한 것이지만, 사실 먼지란 표현 자체는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먼지'라고 표현 한 것은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라는 책에서 읽은 것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즉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가정아래 과학적으로만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존재론적으로 봤을 때 정말 미미한 존재라는 것이다. 뭐 개체의 크기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사는 100년은 우주에서 보면 그저 찰나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일상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는 사실 정말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여질 수도 있는 것이다. 참 어이없지 않나. 내가 이렇게 아둥바둥 사는데, 이게 그렇게 보여질 수 있다니!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즉, 애초에 의미있는 삶이란 건 각 개인이 만들어야만 정말 의미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고도 읽힌다. 그렇지 않으면, 약 100년이란 짧고도 긴 인생을 영위하기 어렵다고 한다.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 나는 이 글귀가 인상이 깊었다.
지금에야 든 생각인데 나랑 효녕이가 나눈 대화는 같은 맥락을 함께 한 것 같다. 우리가 정말 먼지같이 작은 존재라면, 스스로를 인생의 주인공이라 생각하고 자신만의 존재 의미를 만들어가며 주체적으로 살아 갈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미한 존재'라는 것이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 충분한 존재론적인 이유가 된 것이다.
어차피 먼지같은 존재인데! 이왕 이렇게 된거,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도 결국 그저 다른 먼지들이 하는 이야기일 수 있다고 생각해버리는거다! 그래서 다른 먼지들에 휘둘리지 말고, 비난도 흘려듣기도 하고! 그리고 이왕이면 같은 먼지들끼리 잘 지내보기도 한다고 생각해보는 거다.
또, 한시라도 빨리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것, 편안한 것, 경험해 보고싶은 목록을 적고 하나씩 맛도 봐야 한다. 슬프거나 힘든 일도 잠시 지나가는 해프닝으로 여기거나, 극복하는 과정을 주인공 마인드를 함양하고 멋지게 해내보는 것도 좋다. 즐기는거다. 자신이 생각하는 근사하고 멋진 삶을 설계해서 그냥 맘껏 즐겨 볼 용기를 가지려고 노력해보자. 그리고 그 작은 성취감들이 쌓이는 것을 세심하게 지켜보다 보면, 훗날 후회가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내가 정말 그렇게 작고 미미한 존재라면?'
그럼에도 작은 걱정은 있다. 이렇게 극단적인 의견을 고대로 믿어도 될까? 이러다 정말 신이 있다면? 비판적인 생각도 함께 해보자..
히히 비종교인의 작은 궁금증이자, 걱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