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느낀바 : 책장

마음이 조금은 헐렁한 사람

멍뭉미안녕 2020. 8. 21. 14:21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는 빈방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나요?


p.16
'뺄셈의 부드러움'은, 뭔가 해주는 '플러스 부드러움'과 대비되는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부드러움.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지만, 누군가를 담담히 지켜봐주고 믿어주는 자세를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부드러움을 추구하는 일엔 용기가 필요하다. 별 볼 일 없어 보이고, 초라해 보이는 건,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뭔가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 큰 생각을 품은 사람에게는 사소한 걸 희생시키는 일이 좀 쉬울지도 모른다.

p.25
가정과 직장에서, 남을 돕고 구성원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를 설계하는 일은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가진 가정이라면, 아이들이 엇나가기도 힘들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가진 직장이라면,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직원이 많아 질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는 교실이라면, 학교에 오고 싶은 학생이 많아질 것이다.

p.51
우리는 많은 친절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그것을 마치 공기나 바람처럼 이 세상에서 흔하디흔한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친절은 공기나 바람이 아니라, 잘 다듬어져 부드러워진 바위에 가깝다. 한 사람이 베푸는 친절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어진 그 사람의 태도이다 자세다. 흔해 보이지만,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p.55
공백은 우리가 사랑할 빈틈을 마련하고,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 찾게끔 만든다. 그건 가치 있는 것으로 채워질 가능성의 공간이며, 부러 창조할 만한 것이다.

p.95
문제는 여러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좋은 주장'만큼,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좋은 침묵'이 어렵다는 데 있다. 좋은 침묵은 결과적으로 다른 이를 배려하고 포용하는 것이지, 스스로를 무관심하고 무신경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p.187
우리 사회는 '나만의 것' 하나를 가진 상황보다, 모두가 가진 하나를 갖지 못한 현실에 주목하는 사회임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즉 누군가가 가진 독특함보다, 결핍이 없는 상태를 더 높이 쳐준다는 얘기다.

.209
안락하고 풍족한 것을 추구하는 삶은, 달콤할 순 있어도 맛 좋은 삶은 아닐 수 있습니다. 전 맛 좋은 삶을 살려고 합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제 입맛에 맞는 삶이죠.

p.242
좋은 책이 만들어주는 가장 멋진 일은 내가 누군가에게 그 책 같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하는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따듯한 느낌과 생경한 감정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좋은 책을 만나는 일과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은 이런 면에서 연결되어 있다. 어떤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내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면 독서에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p.248
다른 이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나의 생각과 감흥을 얼마나 그 원형이나 본질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지가 경지에 가까워지는 과정이라면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과 감정의 원형을, 글로 표현하고 바깥 세계에서 복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벼리는 일도 경지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과정이다.
결국 글쓰기의 경지라는 것은 이 정도 실력이면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겠지, 하고 재는 가늠자가 아니다. 그런 기준은 스포츠나 기술적인 영역에나 존재하는 것이다. 글쓰기로 상대해야 하는 대상은 아무도 아닐 수도, 모든 사람일 수도 있다. 글쓰기의 경지는 단지 확률을 높이는 일이다. 내가 본 풀꽃의 미세한 떨림을 글이라는 진동판으로 전달해 독자에게 세상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할 확률, 내가 잡은 손의 온기를 글이라는 전도판으로 전달해 독자의 심장을 태워버릴 확률.